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만들어가는 데 사용하는 일생의 '도구적 언어'다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작문 교육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어법에 맞는 문장을 작성하도록 반복적으로 지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구성력과 주제 부양력을 키울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 주는 일입니다. 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첫째 과제를, 그 이후에는 둘째 과제를 수행토록 해야 합니다. 문장의 주술관계를 분명히 하는 글쓰기 훈련과 어휘력 신장을 위한 꾸준한 독서 훈련으로 첫째 과제는 달성됩니다. 어려운 것은 둘째 과제인데 그 수준이 천차만별, 사람에 따라, 목표에 따라, 장르(용도)에 따라, 한두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수많은 내부(세부) 수행과제를 요구합니다. 학교와 같은 보통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에서 하나의 페다고지를 가지고 일괄적으로 지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각자가 원하는 글쓰기 공부를 위해서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시인이 소설가 지망생을 가르치기가 어렵고 논술 전문가가 시인 지망생을 가르치기가 어렵습니다. 영재가 아닌 교사가 영재아들의 글쓰기를 지도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작문이라는 교과를 담당한 교사는 '도우미'의 입장에서 학생 스스로가 스스로 문리(文理)를 깨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높은 수준의 작문 지도를 원하는 학생이라면 학교 교육(초·중등)에서 원하는 일정한 수준의 글쓰기 능력은 갖추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그런 '탁월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문 교육에서는(이를테면 대입 수시 입시에서 논술로 당락을 결정짓고 싶은 학생의 경우) 교사가 베풀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사가 학생이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문식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표현과 이해의 과정을 시범해 보일 수가 없다면 '침묵의 격려'를 해주는 것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학생이 원하는 수준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절망감을 줄 정도의 '높은 수준'을 보여줄 수 없을 때에는 알려진 좋은 문장들을 골라서 학생들에게 그것들을 답습해 보기를 권하는 것만 하면 됩니다. 그 이상은 가르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글(자)쓰기로 아들과 겨루지 않고, 스스로 '어디까지 인 줄 분명히 알았던' 자신의 득의기(得意技), '떡 썰기'로 아들을 가르친 것은 지금도 우리에게는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석봉은 어머니의 '어둠 속에서도 가지런히 썰린 떡'에서 하나의 목표를 봅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자기가 달성한 목표를 시범함으로써 아들이 목표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런 것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 취하는 태도입니다.

교육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는 네 댓 살의 어린이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동안 이른바 '도구적 언어(Instrumental speech)'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나이 또래의 어린이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과정을 소리 내어 연습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도구적 언어'는 자신이 학습한 사회적 언어를 '내적 사고'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활동입니다. 글쓰기는 한 인간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만들어가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는 일생의 '도구적 언어'입니다. 그것을 아무렇게나 가르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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