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쉴틈없이 일해… 아랫사람에게도 깍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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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國父’ 리콴유 타계]40년 가정부가 전한 소탈한 삶
저녁 9시 늦은 식사도 다반사… “등하교 스스로” 자녀교육엔 엄격

“그 영감님은 집에서 위세를 부리는 법이 없었고 아랫사람에게 깍듯했지요. 집에 와서도 쉴 틈이 없이 바쁘다는 것 말고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답니다.”

여기서 ‘그 영감님’은 다름 아닌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이다. 리 전 총리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총리에서 퇴임하기 직전까지 약 40년간을 지켜보며 가정부와 보모로 일했던 어우양환옌(歐陽煥燕·98·사진) 할머니는 23일 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생전 고인의 소탈했던 삶을 중국 언론에 전했다.

현재 광둥(廣東) 성에 사는 할머니는 “리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전해주러 집에 찾아온 공무원들에게 소식을 듣고서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TV로 뉴스가 나오자 그제야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첫째와 둘째 아들이 너무 상심하지 말고 건강을 지켜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고 중국 일간지 난팡(南方)도시보가 24일 전했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와 리셴양(李顯揚) 민간항공청(CAAS) 의장을 말한다.

할머니는 리 전 총리가 영국 유학에서 돌아오기 1년여 전에 그의 집에 들어가 리 전 총리의 2남 1녀를 길렀다. 장녀 리웨이링(李瑋玲) 싱가포르뇌신경의학원 원장도 ‘주인’의 딸이지만 이름을 부르며 격의 없이 지냈다는 것.

할머니는 “리 전 총리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관대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는 엄격해서 운전사가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이 집안일 하는 사람들한테 함부로 굴지 못하게 철저하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는 “리 전 총리는 밤늦게 들어와 오후 9시쯤 저녁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아랫사람들이 기다리지 말고 오후 6시쯤 식사를 하도록 했다”며 “식사도 가리지 않고 해주는 대로 잘 먹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1930년대 초반 싱가포르로 일자리를 찾아 왔으며 1940년대 리 전 총리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1986년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줄곧 리 전 총리 집에서 일했다.

리 전 총리의 자녀들은 지금까지 할머니와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할머니와 특히 가깝게 지냈던 장녀 리웨이링 원장은 2005년 가족사진을 할머니에게 보내기도 했다. 장남 리셴룽 총리는 지난해 주중 싱가포르대사관을 통해 최고의 중국 요리 재료로 꼽히는 제비집 한 상자를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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